한글 글꼴엔 ‘모양새 철학’이 있다한글 글꼴엔 ‘모양새 철학’이 있다

Posted at 2008.10.09 10:00 | Posted in 신문 기사
한자식 네모틀 깨며 새 디자인 잇따라 탄생
문근영·귀천체 등 디지털시대에도 잘 맞아

디지털 시대, 한글이 살아나고 있다. ‘문근영체’ ‘(천상병 시인의) 귀천체’ 등 새로운 글꼴은 종이와 모니터를 넘어 거리까지 점령하고 나섰다. 9일 562돌 한글날. 올해는 처음으로 한글주간(4~11일)이 선포되며 새삼 한글 글꼴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글 글꼴에 대한 몇가지 궁금증을 풀어봤다.

◆“한글은 디자인과 수학의 결합”=한글은 단자음 14개와 기본모음 10개로 이뤄져있다. 언뜻 24개의 글꼴만 디자인하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초성 ‘ㄱ’만 살펴봐도 ‘가, 고, 국, 곽’ 등 조합되는 모음의 형태와 받침의 유무에 따라 크기와 형태가 다 다르다. 한 벌의 글꼴을 만들기 위해 ‘ㄱ’이란 자음 하나를 50개 이상의 형태로 디자인하기도 한다.


현대 한글은 복자음·이중모음을 포함해 ▶초성 19개 ▶중성 21개 ▶종성(받침) 27개 등 총 67개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표현할 수 있는 글자의 총수는 1만1172개(▶받침 없는 글자 19X21=399 ▶받침 있는 글자 19X21X27=1만773)다.

2350자로 구성된 과거의 한글표준코드 KSC5601은 표현할 수 없는 글자가 8822개라는 이야기다. 인터넷 용어인 ‘뷁’ ‘햏’을 쓰면 글자가 깨지는 이유다. 결국 1만1172개 글자를 모두 디자인해야 비로소 한글 글꼴이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글꼴 디자이너들은 1500자 정도의 기본 글자를 만들고 나머지는 모음과 받침의 패턴을 추출해 기본 글자로 재조합한다. 이기성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는 “한글 글꼴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학적 디자인 이전에 한글의 원리를 알고 수학적 패턴을 추출하는 지적 디자인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매체따라 서체도 다양=글꼴은 매체에 따라 달리 만든다. 인터넷에서 쓰는 글꼴과 TV자막용 글꼴이 다르다. 매체의 해상도 때문이다. 책·신문을 제작하는 데 쓰는 인쇄용 본문 글꼴은 초성 ‘ㄱ’자 하나에 50가지 이상의 디자인을 하기도 한다. 반면 휴대전화의 모바일 글꼴은 3개 정도만 만들면 된다. 인쇄용 본문 글꼴의 경우 0.1mm도 안 되는 자음·모음의 미세한 기울기 차이가 글꼴의 형태를 바꾼다. 착시를 역이용해 글꼴의 균형을 잡기도 한다. 실제론 균형이 잡혀 있지만 육안으론 기울어 보이는 글자에 붓글씨의 뻗침처럼 돌기를 달아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한글 1만1172자의 구조를 눈에 익히려면 글꼴 디자인 경력 20년은 돼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전용 글꼴을 채택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광고용 글꼴 뿐 아니라 기업 업무 문서에도 통일된 글꼴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글꼴을 통해 기업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TI(Typography Identity)’다. 박윤정 윤디자인연구소 실장은 “보험회사에서 20대 여성, 중년 남성 등 고객 타겟 별로 글꼴을 별도 제작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훈민정음은 디자인 철학서”=한재준 서울여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지금까지 개발된 한글 글꼴은 3000종 이상이지만 실제 통용되는 것은 10% 미만”이라고 지적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글꼴이 많다는 얘기다. 덧붙여 그는 “한글이 한자(漢字)식의 네모틀을 깰 때 창조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초성·중성·종성 총 67개 자소의 디자인만으로 다양한 글꼴이 탄생한다. 한 교수는 “훈민정음의 제자원리를 보면 자연주의와 실용주의 등 현대 디자인이 추구하는 철학이 다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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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한글, 디자인 그리고 어울림[편집] 한글, 디자인 그리고 어울림

Posted at 2008.09.27 21:55 | Posted in 우리글 한글

1.
21세기 오늘의 문화·사회 환경은 다원적인 가치로 변화되고 있다. ‘어울림’이란, 인류가 그 고유한 문화를 지속케 할 수 있는 생명적 원리이다. 지난 해 2000년 10월, 새 천 년기를 기념하여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 그래픽 디자인 대회’의 주제어는 ‘어울림Oullim’이었다. 이 주제어는 20세기 근대디자인을 뒤돌아 보고, 이즈음의 디자인을 반추하며 21세기에 전개될 디자인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종의 대안적 모토였다. 우리말 ‘어울림’이란 용어는 영어로 ‘The Great Harmony’로 번역되었으며 기존의 ‘조화Harmony’개념을 포괄하는 더 큰 동아시아적 개념의 용어로서 제시되었다.

2.
필자는 한글창제의 디자인적 의의, 한글의 조형과 그 우수성, 그 조형적 우수성에 대한 평가 기준 근거를 어울림의 관점에서 제시함으로써 ‘넓은 의미의 디자인’이라는 지평에서 ‘한글의 디자인적 의의’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의 출발점은 필자가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에 대한 ‘정인지의 해례’ 곧 ‘정인지 서문鄭麟趾序文’에서 발견한 바, 그곳에는 이미 디자인의 원리와 철학이 내재해 있다는 감응에서 비롯되었으며, 필자는 그 문구를 ‘디자인의 원리와 어울림’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것은 물론 이미 행하여진 한글창제의 과학성과 우수성에 대한 논의를 논거로 삼으면서, 필자는 한글창제 자체를 넓은 의미로서의 디자인 행위designing로 인식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3.
‘어울림’의 사전적 해석은 ‘어울리다’, ‘어우러지다’의 명사형으로 ‘이것 저것이 모순됨이 없이 서로 잘 어우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말의 어울림과 상통하는 한자어로 ‘화和’를 들 수 있다. 중국문화에서 ‘화和’ 역시 줄곧 미적 이상으로 여겨졌음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철학적으로 볼 때 화和에 대한 개념의 기초는 《주역》에서 비롯되며, 《주역》에서 천명한 和는, 대립적인 것의 조화와 통일 내지는 더 나아가서 서로 비비고 움직이며 쉬지 않고 생겨나서 그치지 않는 동태적인 균형을 말하며, 《중용》에서의 和란 천하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도道이자, 만물을 화육하는 이치이며 和자에는 성인의 오묘한 뜻이 담겨 있고 천지의 온전한 공덕이자 성인의 완전한 덕德의 상징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어울림으로서의 和는 일찍이 미美의 개념과 연관되기도 하는데, 예술론에 있어 중용관中庸觀과 중화中和사상이 바로 그것이다.
역대로 각각의 중국 예술이론 저작물들은 예술 중의 각종의 대립적인 요소의 통일을 강조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그것을 예술 창조의 중요한 비결로 간주하고 있다.
장기윤張其 의 견해를 빌자면 중용관은 중국예술론의 핵심이기도 한데, 이는 결코 기계론적인 균형설이 아닌 모순을 더 높은 발전으로 통일하는 일이며 그것의 일관된 원칙은 중용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무궁무진한 가능태로서 전체성으로서의 형식미로 이해된다.
담단경譚旦 의 견해를 빌어보면, 중국인들의 天·地·人 삼재三才사상에 있어서의 中和는 사람人으로 전제되며, 中和에 이르는 방식은 곧 우리가 강조했던 양극조화론兩極調和論으로서 비단 유가儒家사상 일 뿐만 아니라, 중국 예술 일반의 관념의 본질이 된다고 역설한다. 그가 말하는 중화의 상태란, 비교적 높은 차원의 중용의 발전과정에서 모순을 통일 시킬 수가 있어서 최후에는 양극상에 군림하는 신영역에 도달하게 된다 한다.

4.
중용과 중화로서의 어울림은 이것과 저것이 화해됨으로써 변증법적으로 지양止揚된 상태라고 말 할 수 있겠다. 어울림은 개체個體가 무시되지 않는다. 개체는 존중되며 만물이 지닌 제 스스로의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다. 곧 ‘어울림’이란 개체의 특성이 희생된 채 둘 또는 다수가 합쳐져서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 하나[一, Unity]로서의 어울림의 가치는 ‘다양성의 통일’ 곧 전체성이며 완전성이다. “이러한 전체성으로서의 하나는 유한한 것의 근원이며 이 하나로써 꿰뚫으면 만물은 상황에 마땅하게 된다. 그러므로 전체성은 생명성 그 자체이며 생명을 지닌 전체성은 진리, 선, 아름다움의 속성이 된다.”
심미적인 속성으로서의 완전성integritas, integrity은 미적 가치가 당연히 가져야 할 본질적인 모든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전체를 통해서 부분이 근본적으로 순수하게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뜻하며 그들이 참으로 주어진 전체의 부분이라는 뜻이다. 곧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이 서로 조화되어 어울리는 전체성을 가질 때 완전함에 이른다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다수가 여전히 다수로 보여지면서 하나가 되는 것that in which the many, still seen as many, becomes one”이며, 이러한 미적 상태를 가리켜, 코울리지Coleridge는 “통일 속의 다양성Multiplicity in Unity”이라 규정한 바 있다.
요컨대 어울림이란, 한 개체가 다른 개체를 파괴하거나 손상시키지 않은 채 전체의 큰 조화 속에서 어울린다. 이 때 ‘어울림’은 대립對立조차 다양성 속에서 다시 큰 하나의 전체성이 되며 그것은 역동적 평형dynamic equilibrium 상태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어울림’은 곧 관계와 사이에서 생긴다. 우주와 인간,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자연, 또 사물과 사물, 사물과 자연, 자연과 자연 사이의 화해된 관계에서 태동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어울림’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존재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생명성에 대한 바탕과 이해의 토대 위에 지극한 자유와 절제를 통한 조화의 추구에서 가능하게 된다 하겠다.


5.
필자가 한글창제의 원리를 어울림의 관점으로 볼 수 있는 근거는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 맨 끝에 붙어있는 정인지 서문鄭麟趾 序文의 “三極之義 二氣之妙, 莫不該括 [삼극三極의 뜻과 이기(二氣, 곧 陰陽)의 묘妙가 모두 갖춰지고 포괄되지 않은 것이 없다]”이라는 문구를 통해서이다.
이 구절은 위에서 밝힌 바, 큰 어울림의 뜻을 내포한다 하겠다. 곧 하늘 땅 인간의 삼극三極의 뜻과 음양 이기二氣의 묘妙가 모두 갖춰지고 포괄되지 않은 것이 없는 것이 바로 훈민정음인 것이다. 어울림은 하늘과 사람과 땅을 어우러지게 하기도 하고, [무한한 것의 창조자로서의 둘로 된 쌍] 곧 허虛와 실實, 양 과 체滯, 중重과 경輕, 강剛과 유柔, 동動과 정靜, 심深과 천淺, 합과 벽闔闢, 음陰과 양陽을 모순됨이 없이 모두를 포괄하지 않음이 없는 지극한 경계의 상태인 것이다.
요컨대 어울림이란 본디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존재하는 섭리이며 우주의 본질이며 인간 본성의 핵심이다. 하물며 디자인이란 우주의 일부분인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소치所致인 바, 디자인의 가치와 본질 역시 인간의 마음, 우주의 본질과 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필자는 어울림의 구체적인 모색의 하나의 시도로 우리나라의 한글을 들어 ‘어울림’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6.
창조적 디자인poiesis으로서의 한글 창제創制
말과 글자는 문화를 담는 그릇이며, 글자는 시각예술 특히 디자인의 핵심이다. 인간의 능력의 상태로 할 수 있는 최상의 디자인이란 창조적 제작poiesis으로서의 글자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이미 알고 있다시피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 역사상 매우 뜻이 깊고 중대한 문화적 사건 중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과거의 우리 민족의 지적 산물 중 세계에 자랑할 만한 것이라 하겠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 창제 동기가 이렇게 뚜렷이 밝혀진 글자는 유례가 없을 것이다. 한글창제의 동기를 살펴보면, 대중성과 실용성에 바탕을 두고 글자의 보편화를 이루어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침으로써 문화중흥을 꾀하려 하는 깊은 '자주'의 뜻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7.
필자가 보기에 한글 창제의 정신은 민족 자주 민주정신, 정보전달을 위한 실용의 정신이며, 그 디자인적 정신은 우주의 원리를 본받았다 하겠다.
1446년 세종대왕은 “우리말이 중국말과 다름에도 글자가 없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流通. 故愚民, 有所欲言, 而終不得伸其情者, 多矣. 予, 爲此憫然, 新制二十八字, 欲使人人易習, 便於日用耳)]” 전혀 새로운 소통 매체로서의 문자를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바로 훈민정음 28자이다.
이 28개의 “글자는 상형해서 만들되 글자 모양은 중국의 고전古篆에 근거를 두었고, 소리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였으므로 음音은 칠조七調의 가락에 맞고, 삼극三極의 뜻과 이기(二氣, 곧 陰陽)의 묘妙가 모두 갖춰지고 포괄되지 않은 것이 없[癸險.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 七調. 三極之義 二氣之妙, 莫不該括]”다.
“정음을 지으심도 어떤 선인先人의 설을 이어 받으심이 없이 무소조술無所祖述,” 이는 전혀 세종대왕의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제작임을 알 수 있다.

8.
우리말은 중국말과 전혀 다른 교착어로 되어 있다. 한국어를 글자로 표현해야 하는 필연적 요청에서 “소리는 있으나 글자가 없어 글이 통하기 어렵더니 하루아침에 지으심이 신의 조화 같으셔서 우리 나라 영원토록 어둠을 가실 수 있도록 하셨도다[有聲無字, 書難通, 一朝制作 神工, 大同千古開  ].”
세종대왕은 글자를 만들었고, 또한 그 결과가 매우 독창적인 상태는 그야말로 창조적 제작으로서의 디자인의 가장 고단위적 행위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훈민정음 28자는 새로운 개념을 부여한 디자인 결과물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음이 만들어진 이치는 하늘[天]에 존재하며 비로소 성군聖君 곧 세종대왕의 손을 빌림으로써 제작될 수 있었다.
디자인의 원리란 천지간의 이치를 인간을 위해 계발해내는 것이 아닌가? 본래 조형원리로서의 형태[形]와 악樂의 원리로서의 소리[聲]들은 하늘과 땅 사이에 잠재태로서 깃들어 있는 바, 정음의 글자를 만듦에 있어서도 그 꼴[象]과 짝지어서 소리가 거세어짐에 따라 매양 획을 더함으로써 제작되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정음 28자에는 창조적 디자인의 결과에 대한 통찰이 엿보이는 바, 그것은 곧 “이 스물 여덟 자는 전환이 무궁하여, 간단하고도 요긴하고 정精하고도 잘 통하는 까닭에 슬기로운 이는 하루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칠 것이요,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으니[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 簡而要, 精而通. 故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란 문구를 통해서이다. 특히 “간이요簡而要, 정이통精而通”이란 언급은 디자인의 원리와 작용성을 해석해 낼 수 있는 구절이다.
요컨대, 디자인은 쉬워야 한다. 그러나 디자인 결과가 간단하나 전환과 변화는 무궁해야 한다. 이는 디자인의 본질과 상통하며 디자인 과정은 곧 본질을 추출해 내는 과정인 바, 그것과 상통한다 하겠다.
필자는 한글의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최적의 질서로서의 시스템의 디자인과 기능적 디자인의 가능한 근거라 보며, 한글 창제에 담긴 심오한 뜻과 포부를 커다란 ‘어울림’의 관점으로 더 나아가서 넓은 의미로서의 디자인 행위designing로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 안상수

출처 : http://www.typojanch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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