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다고 생각하는 일에 미쳐라""즐겁다고 생각하는 일에 미쳐라"

Posted at 2009.05.19 14:17 | Posted in 신문 기사

한글과컴퓨터 자회사인 한컴씽크프리 대표였던 강태진 이사가 KT로 이전한 후 인터뷰 내용이 한국경제신문에 실렸군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강태진 전무는 전 한컴씽크프리 대표이자 국내 기술 벤처기업가 중 하나로 알려진 인물이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전설적인 프로그래머로 유명하지만 사업가로서는 많은 실패를 겪었다.

1988년 '한글2000'을 한글과컴퓨터의 '아래아한글'보다 1년 먼저 앞서 개발하여, 사업을 시작했지만 1994년에 MS워드가 나와 어려움을 겪고 결국은 한컴에 인수되었다. 1999년부터는 미국인 캔 리와 합작해 실리콘 밸리에 싱크프리를 설립해 벤처 신화를 이어갔다.

씽크프리는 본바닥 미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MS Office와 대적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미국의 초고속인터넷망의 확산 속도가 느려 매출이 오르지 않아 투자자들의 불만이 불거져 한컴에 인수 된다. 한컴싱크프리의 대표로도 연구개발에 몰두했지만 2007년 말에 퇴사했다.
 
그는 한글워드프로세스를 처음부터 만들어냈으며 ISO에서 현재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유니코드의 한글 부분 표준을 만드는 일에 기여했다. 천재 프로그래머의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다섯 차례의 사업 실패를 경험했다. 하지만 지난해 KT 전무라는 타이틀로 신사업 본부를 책임지며 화려하게 돌아왔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승리하고야 만 그의 인생과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90년대에 선글라스를 끼고 출근한 유일한 CEO셨다면서요?

저는 남이 어떻게 하든지 별로 신경을 안 쓰고 남이 안가는 길을 가고 싶어요. 아마 한국에서 계속 자랐다면 저도 양복을 입고 출근했겠죠. 중학교까지 한국에서 자라고 고등학교때 토론토에서 살기 시작했어요. 캐나다에서 15년쯤 살았어요. 캐나다는 문화적으로 다문화 사회이기 때문에 그 곳에서 교육을 받은 것에 대해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미국 직원들과 일을 하고 느꼈던 건 그들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죠. 유럽만 해도 웬만한 사람은 3~4개 국어를 하고 다른 배경을 갖는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배려와 이해가 기본적인데 미국 사람은 문화 자체가 자기들 중심이어서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캐나다는 역사적으로 프랑스계와 영국계랑 대립했었고 퀘백주는 프랑스계가 많아요. 그래서 언어가 단일 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소수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법과 제도가 잘 정립되어 있거든요. 기본적으로 이해와 배려가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어요.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양해 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캐나다에서 교육을 받고 훈련되어서 갖는 감성이 제 삶에 매우 큰 도움이 됐어요. 그래서 선글라스에 반바지를 입었나봐요.(웃음)
 
스스로의 인생을 성공했다고 보세요?

사업을 하는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땐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돈을 버는 게 사업의 목표인데 저는 돈을 많이 못 벌었어요. 아시다시피 실패를 여러 번 했거든요. 특히 아이들에게는 제 인생이 좋은 롤 모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좋은 어드바이스와 커리어를 위해 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아이들한테 그런 걸 해줄 수가 없어요. 저도 인생을 잘 모르겠어요. 뭐가 괜찮은 인생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거든요. 그런데 앞으로 10년, 20년 뒤를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제가 아는 건 그 순간 제일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에 미쳐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내가 게으르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잘 모르지만 그때그때 심심한 건 너무 싫어서 없으면 무엇을 만들어서라도 했어요. 한번 하면 끝장을 봐야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결론은 내가 계획했던 대로 되지는 않았더라도 어떻게든 결과는 있었던 거 같아요. 사실 전략 없이 살았던 거죠.(웃음) 그렇지만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 분야에서는 최고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해요. 열정이 없으면 결국은 지칠 수밖에 없거든요. 아직도 여전히 밥은 먹고 살고 있고 지금도 내가 재밌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학교 다니실 때 공부만 하셨을 것 같지가 않은데요?

사실 많이 놀았어요.(웃음) 대학원 때 연극 연출을 했어요. 석사는 보통 1년이면 따는데 논문 쓸 시간에 연극을 하느라고 5년 만에 냈거든요. 거의 기록이에요. 제가 연출했던 연극이 그 때 굉장히 흥행에 성공을 했어요. 캐나다에서 매우 한국적인 소재를 가지고 무대에 해금치고 장구를 쳤어요. 축제 같은 연극을 해서 토론토 연극제에 초청받고 표는 2주 동안 계속 매진이었어요. 정말 재밌게 살았어요. 대학 3학년 땐 수업도 안 들어가고 춤만 췄구요. 그때는 대학원 갈수 있을지 없을지 몰랐을 정도로 학점이 안 좋았어요. 하지만 인생 공부를 많이 했어요. 진짜 거짓말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았어요. 사람이 사는 모습은 소설가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극적이에요. 그래서 제가 소설 한권은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런 걸 경험하고 봤으니까요.

수필집을 쓰셨던데 소설도 써 보시지 그랬어요?

 제 나이 35살에 '내 사랑 내 사업 내 방식대로'라는 수필집을 썼어요. 지금은 절판됐지만 가끔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제가 재판했어요.(웃음) 그 수필집에서도 제가 소설을 쓰고 싶다고 썼었나봐요. 명진출판사에서 소설을 써보지 않겠냐고 제의가 들어왔었어요. 사실 예전에 출장때문에 비행기에서 11시간을 타고 가면서 시놉시스를 생각했거든요. '기계도 사랑을 할까' 라는 제목이에요. 주인공이 컴퓨터공학 교수인데 사회적으로 적응을 잘 못하는 사람이에요.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어서 인터넷으로 접속해서 야한 스토리를 읽고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이죠. 주인공은 사람 대신에 기계가 되고 싶어 해요.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면서도 야한 이야기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다 한글과 컴퓨터에 들어가서 일하다 보니 소설을 끝낼 시간이 없어요. 하지만 소재로 썼던 내용들이 이제는 시대에 안 맞아서 소설로 나오려면 많이 고쳐야 될 거에요.(웃음)

사업 실패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1994년에 회사가 인수되기 전에 내가 시도했던 사업의 상황이 바뀌면서 잘 될 가능성이 안 보이는 거에요. 집을 담보로 해서 대출도 받았었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투자자들에 대한 투자금에 대한 회수도 불가능해 보였어요. 상황을 헤쳐 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아서 절망적이었어요. 한달 정도는 회사에 나가도 일이 안 잡히고 전화가 오면 심장이 빨리 뛰면서 걱정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투자자들은 몰랐는데 저 혼자 고민하고 있었던 거였어요. 그때 이렇게 사느니 죽으면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해서 차를 몰고 한강 고수부지에 갔어요. 비까지 오는데 한강을 보고 있다가 여기서 그냥 차를 세게 몰아서 죽을까 생각했어요. 그러다 한편으로 정말로 죽을 거면 내가 뭘 못할까. 다시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있는데 한글과컴퓨터에서 회사를 인수해서 벗어났어요.
씽크프리 시작하고 나서 닷컴버블이 꺼지고 2003년에 힘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직원을 감원하고 임원들은 급여를 반만 가져가고 나는 1년치 급여를 못 가져갔어요. 가족들이 미국에 있었는데 차를 팔아서 나온 돈이랑 신용카드로만 1년을 버텼어요. 어떻게 버틸까 했는데 또 살아지더라구요.(웃음)

사무실에 첼로가 보이는데 취미로 연주하시나봐요.

어렸을 때 첼로를 배웠는데 요즘은 잘 못해서 레슨을 다시 받고 있어요. 오랫동안 안쳐서 손이 굳었어요. 집에는 어쿠스틱 첼로가 있는데 주중에는 늦게 들어가고 연습할 시간이 없거든요. 주말에만 연습하면 손이 어느새 굳어요. 생각다 못해서 전자 첼로를 사서 사무실에서 머리가 안돌아가거나 골치 아플 때 잠깐씩 머리도 식히고 연습해요.

지금 살고 계신 '조린헌'이라는 집이 기사와 뮤직비디오에도 나오던데요?

남자들은 보통 자동차에 관심이 많지만 캐나다에서 살아서 그런지 너무 요란하고 좋은 차를 타는 게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어요. 대신 어렸을 때부터 집에 관심이 많은 이유가 거기서 시간을 많이 보내거든요. 근데 남들과 똑같은 공간에 있는 게 싫거든요. 집에 사람을 초대해서 같이 밥 먹고 얘기하는 거 좋아하는데 집에 주인의 개성이 보이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잖아요. 여기는 내 공간이라는 생각이 확실히 들었으면 좋겠어요. 결혼하기 전에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스쿨버스 의자를 가져다가 집에 쇼파로 가져다 놓고 했어요. 1989년에 한국에 들어와서는 오래된 한옥을 찾아서 지붕과 기둥을 남겨두고 벽을 철거해서 한 10년을 살았어요. 한옥이 손이 많이 가길래  철거해서 다시 다세대로 만들었어요. 그 집이 '조린헌'이에요.

문화 생활은 주로 어떤 것을 하세요?

현대무용 공연 보는 걸 좋아해요.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까? 인간의 움직임을 보면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특이해요. 무용 공연은 움직임, 음악, 조명까지 어우러진 종합 예술이에요. LG아트센터에서 하는 건 웬만하면 보려고 해요. 대학로 아르코 극장에서는 현대무용공연을 많이 하기 때문에 종종 가요. 연극을 했던 경험 때문에 뮤지컬보다는 무용 공연이 더 좋은 거 같아요. 연극은 여전히 좋아하구요. 네크라슈스의 햄릿 공연처럼 멀티미디어적인 공연이 좋아요.

프로그래밍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처음에 소프트웨어에 빠졌던 이유는 내가 확실하게 제어할 수 있기 때문이었어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일은 내가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있어요. 조그마한 우주 속에 내가 신이 되는 점이 희열을 줬어요. 컴퓨터 앞에 앉아서 프로그래밍할 때는 사흘 밤낮동안 날을 샜어요. 기절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졸지는 않았어요. 끊임없이 프로그램과 교류가 있기 때문에 절대 졸 수 없어요. 안타까운 건 점점 산업화되어 가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의 규모가 너무 커졌어요. 하지만 요즘엔 도리어 좋게 변하고 있어요. 소프트웨어의 낭만적인 시대가 돌아왔다고 생각해요. 애플의  애플스토어를 보면 모바일용 작은 애플리케이션이 나오고 있어요. 똑똑한 친구들이 SK나 nhn같은 좋은 회사에서 나오거나 아니면 회사를 다니면서 모바일용을 만들고 있어요. 혼자서 하거나 둘이서 하는 게 많아요. 누구나 쉽게 애플스토어에서 올릴 수 있기 때문에 1~2년 만에 apstore에 3만개의 소프트웨어가 벌써 만들어져 있어요.

아이디어만 반짝이면 되는 시대가 다시 오고 있어요. 소프트웨어에 들어간 정신과 감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아이폰에 알람 기능이 있어요. 원래 알람의 기능은 정해진 시간에 울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가고자하는 정거장의에 도착시간을 알 수 없어 졸다가 목적지를 놓칠 수 있어요. 아이폰의 알람은 GPS가 탑재 되어 있어서 장소를 정해 미리 알려주는 거죠. 그것도 하나의 감수성이라고 생각해요. 역시 중요한 것은 경험이고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보는 감수성이라고 생각해요.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에요.

자기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새로운 일이 뭐든지 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주변 사람들을 전염시키는 것 같아요.  보통 우울한 사람 옆에 있으면 같이 우울해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내가 정말 열정을 갖고 즐거우면 전염성이 있어서 주변 사람도 비슷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세상엔 사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거든요. 와이프가 저랑 같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서 항상 행복하지는 않을 거 같아요. 사업 실패도 많이 했잖아요. 하지만 나랑 살았던 건 심심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더라구요.(웃음)

한경닷컴 bnt뉴스 서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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